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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사설/칼럼
당신의 언어는 건강한가?유 창 근 (문학박사·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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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5  19:5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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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창 근 (문학박사·시인·문학평론가)

 행동이 생각을 앞설 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무언가 탐탁지 않은 일이 생긴다. 그 날 아침에도 아무 생각 없이 TV를 켰다. TV에서는 마침 <다시 결혼한다면 이런 짝을…>이라는 주제로 이야기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신선하고 흥미 있는 주제라 호기심에 이끌려 소파로 갔다.

내로라하는 출연자들이 각자 다양하고 개성 있는 생각들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있어서 금방 친근감이 느껴졌다. 남녀 출연자들은 배우자의 조건으로 눈이 크고, 예쁘며, 애교가 있어야 한다느니, 말을 잘 들어줘야 한다는 등 외모나 성격을 놓고 비교적 편안하게 이야기 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기까지 했다.

화제가 남자의 나이로 바뀌자 여성 출연자들 간에 연하남이냐, 연상남이냐 하는 문제로 분위기가 조금씩 뜨거워졌다. 연하남을 지지하는 측은 남편의 나이가 어려야 아내의 말을 잘 들어 줄 거라는 주장이고, 연상남을 지지하는 측은 여자가 남자보다 정신연령이 높기 때문에 연상남과 만나야 의사소통이 잘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이야기의 흐름상 자기의 소신을 분명히 밝혀야 할 부분에서 어느 출연자가 “~인 것 같아요”라고 말끝을 흐리는 순간 묘하게 씁쓸함을 느꼈다. 출연자들의 위치를 보아서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생각 없이 TV를 켠 게 잘못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때마침 TV하단에 흐르고 있는 자막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시청자가 보낸 4개의 의견이 모두 “~같아요”라는 어미로 일관되었기 때문이다. ‘항상 내편이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짝이라면 행복할 거 같아요’, ‘내 짝이 애교가 많으면 힘 든 일도 다 지워질 거 같네요’, ‘배우자의 말을 한 발 앞서서 잘 들어주면 부딪칠 일이 없는 것 같아요’, ‘살아보니 다 익숙해져서 괜찮은데 말이 안 통하니 싸우게 되는 거 같아요’. 하나같이 추측이나 불확실한 어투다. 신뢰감도 없고 자신감도 없는 언어의 현실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꼈다.

더 황당한 건, 자신의 기분이나 감정을 나타낼 때도 ‘~같아요’를 사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극장 앞에서 “영화가 재미있었나요?”라는 리포터의 질문에 “재미있는 것 같은데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나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하는가 하면, 리포터가 단풍구경을 나온 관광객에게 “가을 산에 온 기분이 어때요?”라고 묻자, “단풍이 너무 아름다운 것 같아요. 참 잘 온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것은 최악의 언어행태다. 어떻게 영화를 보거나 경치를 보고도 자신의 기분이나 감정을 분명하게 전달하지 못하고, 남의 이야기 하듯 아리송하고 불확실한 어투로 이야기 한단 말인가?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이처럼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같아요”처럼 비언어적인 것들이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자신의 생각을 명쾌하게 드러낼 경우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날아 올 화살이나 비아냥거림이 두려워 사전에 그것을 막기 위해 발동된 심리적 방어기재로 분석된다. 그러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는데 주저하거나 애매하고 불분명한 말로 얼버무린다면 세상 앞에 비겁해지기 쉽다. 또한 자신에게 직무유기를 자초하여 결국 신뢰감이 떨어지고, 품위 없는 사람으로 전락하여 집단에서 도태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로, 이와 같은 현상은 그 시대의 불확실성과 무관하지 않다. 경제학자 겔브레이스 John Kenneth Galbraith는 그의 저서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지난날에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줄 수 있는 철학이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체계성을 갖고 사람들의 판단력을 위한 기준이 되었으나, 오늘날에는 그처럼 확신을 갖게 하는 철학이 없어졌다는 데서 불확실성의 시대로 된다’고 했다. 그러한 사회적 불확실성은 경제뿐 아니라,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의식을 불확실한 것으로 바꾸어놓고, 마침내 언어까지 불확실하게 변질시켜 놓았다는 판단이다. 불확실한 시대에는 자기의 생각이나 철학이 부재하기 때문에, 불확실한 언어들이 무질서하게 사회에 침투한다. 이른바 소재불명의 언어가 곰팡이 균처럼 번식하며 사회의 구석구석을 부패시킨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은 병들어가고 있는 우리말을 적극적으로 바로 잡아줄 장치가 형편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물론 국립국어원을 비롯한 관련 기관들이 나름대로 대책을 세우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정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비언어적인 것들이 활개치고 있다. 더구나 이로 인한 세대 간의 괴리는 물론, 지역 간의 갈등이 갈수록 심해져 결코 방치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언어문제를 가장 신속하게 효과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국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방송 매체가 앞장서면 된다. 방송관계자들이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우리말 바로 쓰기에 선도적 역할을 한다면 의외로 이 문제는 쉽게 풀린다.

지난 2015년 9월 방송통신 위원회와 방송통신 심의위원회가 올바른 방송언어 사용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자막의 경우 맞춤법에 맞는 표기를 해야 하고, 시사 보도 프로그램의 진행자와 출연자는 정확하고 올바른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행이 안 되면 유명무실한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방송 관계자들은 솔선수범하여, 먼저 방송진행자나 사회자를 포함한 모든 방송출연자들에게 올바른 언어사용에 대해 철저한 사전교육을 해야 한다. 지키지 않을 경우 거기에 상응하는 대가를 부여하는 등 구체적인 대책도 필요하다. 생방송이나 녹화방송 시간에 출연자의 언어가 바르지 못할 경우, 즉시 자막을 통해 바른 언어로 수정해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 시대언어를 주도하는 절대적 힘이 방송언어’라는 사실을 절감하고 방송관계자들이 바른 언어 사용에 앞장서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사회의 언어문제를 더 쉽게 풀어갈 수 있는 키는 바로 우리가 쥐고 있다. 언제까지 남의 탓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나의 언어는 건강한지?’ 스스로 자기의 언어를 점검하고 바르게 사용할 때, 언어에 대한 무질서 내지 혼돈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다. 말이란 바르게 사용할 때 비로소 참다운 의미로 존재하는 것이다. 희미하게 느끼고 애매하게 생각한 것들을 분명한 말에 담아서 표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그것을 영원히 놓쳐버린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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