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무량사아미타학술대회
제1회 무량사아미타학술대회
  • 부여방송
  • 승인 2019.08.27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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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이 살다가 뼈를 묻은 곳, 무량사
조선 중기 학술 문화와 정신사를 이끈 성지 계승 발전시켜야
무량사(주지 정덕 스님) 아미타 학술회의

무량사(주지 정덕 스님) 아미타 학술회의가 지난 24일 박정현 부여군수를 비롯해 임병고(사적연회 회장) 등 각계의 인사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부여군여성회관에서 개최되었다.

부여군이 주최하고 만수산 무량사가 주관한 이번 학술대회는 김시습과 무량사’, ‘무량사와 김시습의 관계’, ‘무량사의 건축 역사적 조명에 대한 주제로 소종섭(매월당기념사업회 회장), 최영성(한국전통문화대 교수), 장헌덕(한국전통문화대 교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또한, 2부에서는 무량사 불교조각수륙재의문과 무량사 영산재에 대해 정은우(동아대, 고고마술사학과) 이성운(동방대학원 교수), 보명(내포 영산재 법륜사 전승도량)스님 등이 최근 관심사가 되고 있는 수륙재 관련 연구 자료를 발표해 눈길을 모았다. 이어 최영성(한국전통대교수)의 사회로 질의와 응답의 시간을 갖고 토론회를 마쳤다.

학술심포지엄에 참석한 발표자와 내빈들

정덕 무량사 주지스님은 무량사는 14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현재 보물 7, 지방문화재 10여점 등 800여 점의 문화재를 대량으로 소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문화재 사찰이고 부여만의 사찰이 아닌 전국적으로 지명이 있는 가람입니다라며 생육신의 한 분이요 조선 최고의 천재로 불렸던 설잠스님(김시습)이 우리 무량사에 머물다 열반하셨으며 그 어른의 부도가 우리 사찰 경내에 있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화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도력이 높았던 진묵 스님, 능허당 처영 스님 등, 불교사에 유명한 여러 스님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고 말했다.

정덕 스님은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105일에는 다례제와 영산제를 복원하고 성보관 건립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무량사를 통해 전통문화와 예술을 계승하고, 역사 속에 숨은 무량사 이야기를 현대인들이 보고 듣고 귀감이 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정현 부여군수도 인사말에서 오늘 무량사의 전통과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된 1회 만수산 무량사 아미타 학술대회개최를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무량사의 가치를 찾는 일이 늦은 감은 있습니다만 우리가 꼭해야 할 일이며 오늘 학술대회는 무량사의 역사적 가치와 무량사와 연관된 인물들의 적과 사상 등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재조명해 볼 수 있다는데서 더욱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병고 백제사적연구회 회장도 무량사의 역사와 문화·예술과 정신세계를 심도 있게 재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전문학계의 저명한 학자님과 교수님들을 연사로 초빙하여 학술회의를 마련하신 정덕 주지스님의 혜안에 경의를 표하며, 이번 학술회의가 더욱 발전하고 오래도록 이어져 나가 백제불교와 한국불교의 근원을 밝히며 만수산과 무량사와 극락전에 담겨있는 불교의 진수를 전 세계 인류를 대상으로 홍보하는데 까지 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무량사라면 떠오르는 본인의 추억을 되짚어 보면 연재 홍사준 선생님의 문하생으로 무량사 석탑 해체 보수공사에 참여하여 동석탑 5층 탑신 내에서 발견된 사리함을 승방에 옮겨놓고 녹색 사리 1과와 백색 사리 92과를 조심스럽게 골라내던 일 등 엊그제 일 같이 생생하다며,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전통문화와 예술을 계승하고 역사 속에 숨은 이야기를 보고 듣고 귀감이 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소종섭(매월당김시습기념사업회 회장

이어 제1부 기조발표에서 소종섭(매월당김시습기념사업회 회장) 씨는 김시습과 무량사란 주제로 김시습은 누구인가?’ ‘김시습과 불교’ ‘김시습과 무량사에 대한 발표를 하였고, 최영성(한국전통문화대 교수)와 장헌덕(한국전통문화대 교수)의 발표가 이어졌다.

발표에 나선 최영성(한국전통문화대 교수)무량사는 조선 중기까지 천년 고찰로 그 명성을 떨쳤다“16세기부터는 말년의 김시습이 살다가 뼈를 묻은 곳으로 더 유명하였다. 척불(斥佛)을 외치던 유자들이 이곳을 많이 찾았다. 무량사가 어느새 청은(淸隱) 청절(淸節)의 성지로 인식되었다고 말했다.

최영성(한국전통문화대 교수)
최영성(한국전통문화대 교수)

이어 김시습은 무량사에 잠시 머물다 갈 생각이 아니었다그는 이곳에서 삶을 마치겠노라는 요량으로 들어왔다. 김시습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사실상의 임종계인 '무량사 와병' 시를 남겼다. 또 스스로 초상화를 그리고 자찬(自贊)을 지었으며, 죽은 뒤에 화장을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런 것들을 보면, 죽음을 앞두고 차근차근 준비를 했음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무량사가 옛 명성을 되찾기를 기대한다. 조선 중기 학술 문화와 정신사를 주도했던 유수한 사찰이었던 만큼 그 전통을 현대에도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무량사와 김시습 관련 사료가 다수 발굴되어 현대판 무량사지()를 편찬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며 발표를 마쳤다.

장헌덕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장헌덕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이어진 발표에서 장헌덕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무량사는 통일신라시대 범일국사에 의해 창건되어 정유재란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어 현재의 극락전 공간이 주된 영역이 되었지만 고려시대에는 만수산 북쪽에서 남으로 흐르는 개천을 중심으로 현재의 일주문 주변에도 여러 건물들이 배치되어 2개 영역으로 구성된 가람의 모습이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배치는 인접한 공주 마곡사에서 개울을 중심으로 대웅전 영역과 영산전 영역이 나누어지고 있고 장곡사에서는 상대웅전과 하대웅전 영역이 나누어져 있어 무량사도 교리적인 측면에서 공간구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무량사 극락전은 공주 마곡사 대웅전, 구례 화엄사 가황전, 보운 법주사 대웅전 등의 중층불전과 비교해 볼 때 고려시대 석탑과 석등, 극락전이 남·북축을 이루어 백제가람의 맥을 이어가는 공간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건물내부에 소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과 후불탱화는 다른 사찰과 비교 될 수 없는 불교미술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므로 극락전의 건축 역사적 가치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우리나라 사찰 연혁이 대부분 확실하지 않지만 극락전 이외에 현재 사찰과 관련되거나 사찰에 소장된 무량사 미륵불 괘불탱(보물 제1265), 김시습 초상(보물 제1497), 부여 무량사 소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 제1565), 부여 무량사삼전패(보물 제1860), 무량사 김시습 부도(충청남도 유형문화제 제25) 등의 관련 문헌을 다시 한 번 검토하여 연혁 등 오기된 무량사 연혁을 다시 한 번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2부 발표에서는 수륙재와 관련한 주제로 정은우(동아대 교수), 이성운)동방대학원 교수).보명 스님(내포 영산재 법륜사 전승도량)의 발표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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